익숙함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처음 이곳에 발을 들였을 때는 참 낯설었어요. 길이 익숙하지 않았고, 버스 번호도 이상하게 많았죠. 매일 같은 길로 출근하면서도 종종 엉뚱한 골목으로 들어서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바뀌더라고요. 문득 지나가는 이웃의 얼굴이 익숙해졌고, 슈퍼 사장님이 “오늘은 늦네요?”라고 말을 건네기 시작했죠. 도시가 나를 조금씩 받아들이는 그 느낌, 어쩐지 고맙고 따뜻했습니다.
조금씩 생기는 나만의 장소들
어느 카페에 앉으면 글이 잘 써지고, 어느 공원을 걸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그런 장소들이 하나둘 생기면서 이 도시가 ‘내가 사는 곳’에서 ‘내가 살아가는 곳’으로 바뀌기 시작했어요. 요즘은 점심시간만 되면 작은 분식집에 가요. 메뉴는 매번 같은데, 그게 좋아요. 변하지 않는 게 있다는 건 꽤 큰 안정감이거든요.
누구나 기억될 권리가 있어요
요즘은 가끔 이런 생각을 해요. 내가 이 도시를 떠나게 된다면, 이곳은 나를 기억해줄까? 하물며 길가에 심은 꽃 한 송이도, 내가 물 줬던 그날을 기억해줄 수 있을까. 사실 꼭 기억되지 않아도 괜찮지만, 어딘가에 내가 남겼던 작은 흔적들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어요.
사람이 사는 곳은, 결국 사람 덕분이에요
건물도 멋지고, 편의시설도 좋지만, 진짜 마음이 가는 건 사람입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눈 마주치며 인사해주는 이웃, 새벽 조깅할 때 손 흔들어주는 경비 아저씨, 그리고 내 얘기를 지겹지 않게 들어주는 옆집 언니.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이 도시는 도시가 아니라 ‘마을’ 같아지는 거죠.
앞으로도 계속 이곳에서
가끔 떠날까 고민도 해요. 더 좋은 조건, 더 큰 도시, 더 넓은 집. 그런 것들이 유혹할 때도 있죠. 하지만 이 도시가 나를 기억해주는 것 같다는 그 느낌 하나로, 오늘도 그냥 여기 있으려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 도시를 떠나게 된다면, 이곳이 나를 아주 조금이라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그게 전부예요.
